<뮤지컬 아이다> (AIDA, 2016-2017)
review1. 고마운 변화
2016년에 제가 만난 뮤지컬을 바로 아이다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렸을 때부터 뮤지컬을 좋아했어요. 몇 년도에 방영되었는지 지금은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초등학생 때였을 거예요. <뮤지컬 정글북>이 TV에 방영된 적이 있어요. 집 안에서 적잖이 비글이어서 가만히 있을 줄 모르던 제가, 그 정글북을 가만히 앉아서 봤다고 해요.
2016년에 제가 만난 뮤지컬을 바로 아이다였습니다.
아이다를 본 것은 작년 12월이었어요. 그동안 이 작품을 이야기하는 것을 미루고 미뤄서, 이젠 아이다의 공연 기간이 고작 2주 정도 남았네요.
우선 12월에 나의 생일선물로 뮤지컬을 주겠다고 결심하고, 12월에 하는 작품들을 찾아봤어요.
보디가드, 로미오와 줄리엣, 인더하이츠, 어쩌면 해피엔딩(이제와서 알게 된 건데 이 작품도 보물이더군요), 지킬앤하이드 월드투어, 빨래, 그날들, 아이다. 물론 이보다 더 많지만, 당시 제가 찾아보던 것들은 이런 것들이었어요. 연말이라 그런지 엄청 많은 뮤지컬들이 공연 중이었지요.
이 작품들 중 아이다가 제 눈에 들어온 것은 딱 한 장면 때문이었어요.
아이다의 배경은 이집트가 중앙아시아로 영토확장을 하고 식민지를 개척하던 시절입니다. 당시 이집트와 나일강을 공유하고 있던 누비아로도 이집트는 영토확장을 시작하고, 그 과정이 많은 누비아의 백성들이 이집트에 노예로 잡혀옵니다. 그 중에 누비아의 공주였던 아이다가 있었지요.
대부분의 백성들은 공주의 얼굴을 모르지만, 우연히 공주의 얼굴을 본 적 있던 메렙이라는 소년이 아이다를 알아봅니다. 아이다는 부디 자신이 누비아의 공주라는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지만, 결국 메렙에 의해 누비아 출신 노예들 사이에 누비아의 공주가 잡혀왔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요.
마음붙일 곳이 어디에도 없던 누비아인들에게 아이다의 존재는 어떤 희망이 되어버립니다. 누비아의 공주가 잡혔으니 이제 누비아의 왕도 조금 더 적극적인 대응을 해줄 것이라는 희망도 생기고, 이집트의 노예로 살고 있는 누비아인들에게 어떤 지도자가 생긴 것이니까요.
누비아인들이 아이다에게 자신의 지도자가 되길 청하고, 아이다는 부담감과 무력감 속에 그 바람을 거부하는 장면이 바로 이 장면입니다.
이미지 출처 : 아시아경제
이 장면을 처음 봤을때 너무 좋았어요.
첫 번째로 식민지를 개척하는 이집트와 식민지가 된 누비아라는 배경이 제 취향이었구요. 그 가운데 연기하는 앙상블(누비아인)들의 춤과 표정이 누비아인들의 절실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느껴졌어요.
공주에게 누비아인들이 손수 만든 낡은 예복을 바치는 장면에서, 노래하는 앙상블의 목소리도 엄청 좋아요. 극 중 이름이 따로 소개되어있지 않은데, 그 점은 조금 안타깝네요. 제가 이 장면을 오죽 좋아하면, 친구에게 "드디어 아이다를 보러왔다"며 보낸 문자에 이렇게 적었어요.
드디어 완벽하진 않지만 누비아인들의 영혼이 담긴 누더기 예복을 보러 왔어!
저는 가수 출신의 뮤지컬 연기자에 대한 편견이 조금 있어요. 그런데 옥주현은 정말 대단한 연기자인 것 같아요. 표정과 목소리에서 오는 힘이 어마어마하네요. 마음을 돌리고 누비아인들의 지도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는 그 장면에서는 정말로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 넘버를 너무너무 좋아하지만, 한가지 우려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그 전에 후렴 가사를 살펴볼게요. 2005년에 공연했던 아이다의 버전이예요.
아이다! 아이다!
우리의 바람
그건 평생의 봉사, 지혜, 용기
우리를 이끌어줘요
구원해줘요
아이다! 아이다!
아이다는 한 무리의 지도자가 되기에 큰 손색이 없는 사람이예요. 리더쉽도 있고, 용감해보이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지도자로 추앙하는 백성들이 그녀에게 평생동안의 봉사를 요구할 권리는 없지요.
누비아에서 아이다는 다른 누비아인들보다 사회적 강자의 위치에 있지요. 또 재밌게도 이집트에 끌려온 후에도 '라마데스'라는 장군의 눈에 들어 조금 더 편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보통의 경우 사회적 약자가 사회적 강자에게 휘두르는 폭력은 폭력이라고 보지 않아요. 페미니즘에서 여성이 남성을 역차별하고 있다는 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것처럼요. 누비아인들은 아주 절실하기도 하고, 왕족의 피가 흐르는 그녀를 당연한 지도자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더구나 더더욱 이러한 요구를 폭력이라고 생각하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아이다는 누비아의 운명이 기울어가는 것에 큰 절망을 느끼고 있는 상태죠. 누비아에서였다면, 다른 백성들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겠지만, 이 곳은 이집트인걸요. 이러한 상황 안에서는 '평생의 봉사'라는 표현이 아이다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올 것 같아요. 아이다는 '두렵다'고 표현하죠.
이미치 출처 : 뉴스컬처
2016년 버전의 아이다 쇼케이스 영상을 보는데, 귀에 익은 가사가 다르게 나오더군요. 2005년, 옥주현의 아이다를 귀가 닳도록 봐서 처음에는 바뀐 가사가 너무 어색했어요. 자세한 가사는 아래 첨부할 영상을 통해 확인하시면 좋을 것 같고, 후렴구 가사를 소개해드립니다.
아이다! 아이다!
바라는 것은
당신 자신의 의미, 지혜, 용기
그 것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냐
아이다! 아이다!
너무도 훌륭한 변화라고 생각해요. 누비아인들의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서도, 아이다에게는 너무 가혹하다고 느껴졌던 가사가 조금 더 배려하는 느낌의 가사로 바뀌었어요.
부담스러울 것을 알지만
우리의 마음이 당신을 너무도 원하니
그저 당신을 따르는 것만 허락해달라
우리를 위해 무언가 해달라고 느껴졌던 가사가 이런 느낌으로 바뀐 것이죠. 아이다의 팬으로서 너무 감사한 변화였어요. 라이센스 뮤지컬은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공연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변화는 생기는군요.
마지막으로 올해의 가사로 된 영상을 첨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