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FILM

목소리의 형태(A Silent Voice, 2017) | 부서진 관계 사이

Attic.Dawn 2017. 5. 15.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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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의 형태> (A Silent Voice, 2017)

부서진 관계 사이


 제목이 참 별로다 생각했어요. ‘형태’라는 단어에서는 마땅한 정서가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일어 제목은 ‘聲の形’. 말 그대로 목소리의 형태라는 말이지만, 모양이라는 같은 의미의 다른 말이 저에게는 더 부드럽게 느껴지네요. 영문 제목은 'A Silent Voice : The Movie', 풀어보자면 ‘소리 없는 목소리, 극장판’ 정도겠네요.


 청각장애를 지닌 ‘니시미야 쇼코’를 그대로 연상시키는 영문제목보다는 서로의 목소리가 가진 모양이 다르다는 의미의 일어와 우리말 제목이 더 좋은 것 같아요. A Silent Voice라는 말은 Voice의 정상적인 형태는 조용하지 않다는 전제를 하고 있는 말 같아요. 그래서 영화의 주인공의 과거 모습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제목이 쇼코를 존중해주지 않고 있다고 느껴져요.



 저는 가해자에게도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 기회를 줘야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절대로 과거를 청산할 수 없고 평생 가해자로 살아야한다고도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자아가 완전히 만들어지지 않은 때에 저지르는 실수들 때문에 평생을 저당 잡히는 것은 가혹하다고 생각하지만, 피해자는 그 트라우마를 평생 가지고 살아가야하니 가해자는 그 죄의식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해야한다고도 생각해요. 이미 건전한 관계는 부서졌으니까요.


 <목소리의 형태>는 ‘가해자’가 과거를 청산하는 방법(?)─이 말보다는 ‘잘못을 용서받는’이 더 어울릴까요?─그리고 청산할 수 있다, 없다의 경계에서 계속에서 줄타기하는 아슬아슬한 영화입니다. 명백한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되어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또 가해자이기도 피해자이기도 한 상황들이 얽혀있어서, 보는 내내 답답하고 긴장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작화 깡패라고 불리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이 예쁜 이미지와 달리 이야기를 풀어내고 연출하는 방법에서 저를 완전히 실망시켰던 것에 반해, <목소리의 형태>는 작화적인 부분은 아쉬웠지만 예민한 문제에 대한 감독의 조심스러운 태도가 느껴져서 좋았던 영화입니다.



 예고편의 전체적인 느낌이 마치 학원 연애물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전혀 달라요. 쇼코가 ‘이시다’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이 장면이 예고편에 삽입되고 <너의 이름은>의 연출자였던 신카이 마코토의 평이 삽입되면서 마치 이 영화가 <너의 이름은>과 비슷한 결의 작품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네요. 사실은 <너의 이름은>과 상당히 다른 방향의 작품이고 저는 그래서 좋았거든요.



 친구는 코믹 버전의 <목소리의 형태>를 읽다가 그만뒀다고 해요. 이야기 초반부에 이시다가 쇼코에게 저지르는 수많은 과오들이 ‘구역질이 나올 만큼’ 보기 싫었다는 군요. 이 만화의 많은 팬들이 영화에서 빠져버린 서사가 많다고 하던데 그게 어떤 것이었을지도 궁금합니다.

 쇼코의 자책과 자살시도, 그리고 그걸 구하다가 반대로 다쳐버리는 이시다. 아마 이시다와 쇼코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선, 쇼코에 의해 이시다가 다시 크게 다쳐버리는 상황이 연출되어야만 했지 않았을까 싶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짐을 지우는 상황이 되어야만 어찌어찌 균형이 맞춰지는 관계.



 또 매력적인 인물이 나오는 것도 좋습니다. 어떻게 실사의 사람이 하나도 나오지 않는 애니메이션에서 인물을 살아있게 하고 매력있게 만드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쇼코의 동생 유즈루는 특별하게 느껴져서 그 느낌만으로도 장면들이 살아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사하라도 그렇고요.

 


나는 너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俺と西宮…友達に慣れるから?

  영화 전반을 흐르는 문장이예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주변에 흐르는 많은 것들을 똑바로 직시해야만 관계가 회복될 수 있다는 거죠. 영화는 이시다의 입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가위표를 붙였지만, 쇼코도 같았을 겁니다. 그래도 적어도 영화 안에서 둘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누군가의 얼굴일 직시하지 못하고 외면한 채 살진 않았을지, 정작 저는 있고 있던 어떤 상처에 대해 제가 사죄해야 하는 일은 있지 않을지 생각합니다.